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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이 개발한 신약, 믿어도 될까?

by woanss 2025. 3.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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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가 제약 산업에 가져온 혁신과 신뢰의 갈림길

신약 개발에 인공지능이 쓰이고 있다는데, 과연 믿어도 될까요?
과거에는 신약 하나를 개발하는 데 평균 10년 이상의 시간이 걸렸고, 수천억 원의 비용이 들었습니다. 그만큼 제약 산업은 시간과 비용, 실패율이라는 삼중고에 시달리는 분야였습니다. 그런데 최근 몇 년 사이, 이 긴 여정을 단축시킬 수 있는 새로운 도구가 등장했습니다. 바로 인공지능(AI)입니다.

AI는 지금 이 순간에도 신약 후보물질을 찾고, 임상시험 성공 가능성을 예측하며, 기존 약물을 새로운 질환에 재적용하는 작업까지 하고 있습니다. 이 글에서는 AI가 제약 산업에 어떻게 활용되고 있는지, 실제 사례는 무엇인지, 그리고 과연 우리가 AI가 만든 신약을 믿고 복용할 수 있는지 함께 생각해보겠습니다.

 

AI가 신약 개발에 어떻게 활용되나?

신약 개발은 보통 다섯 가지 단계로 나뉩니다.
① 후보물질 발굴 → ② 전임상시험 → ③ 임상 1상, 2상, 3상 → ④ 허가 신청 → ⑤ 시판 후 모니터링.
이 과정에서 가장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들어가는 것은 초기 후보물질을 발굴하고, 임상시험을 거치는 과정입니다.

AI는 이 두 단계를 혁신적으로 단축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갖고 있습니다.

1. 후보물질 발굴

과거에는 수천 개의 화합물을 일일이 실험해보며 신약 후보를 찾았지만, 이제는 AI가 분자 구조, 유전자 정보, 단백질 상호작용 등을 분석해 수많은 후보 중에서 가장 가능성 있는 물질을 자동으로 도출해냅니다. 이 과정은 기존 대비 수십 배 빠르게 진행됩니다.

2. 임상시험 성공률 예측

AI는 수많은 임상 데이터와 논문, 전자의무기록(EMR) 등을 학습해, 어떤 환자 집단에서 어떤 약물이 효과가 있을지 예측할 수 있습니다. 이로 인해 실패 가능성이 높은 임상시험을 사전에 거르고, 효율적인 임상 설계가 가능해집니다.

 

실제 사례로 보는 AI 신약 개발

이제 AI는 단순히 연구실 실험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실제 제약회사와의 협업을 통해 시장에 진입하고 있는 단계입니다. 국내외 주요 사례를 살펴볼까요?

1. 미국 — 인실리코 메디슨(Insilico Medicine)

AI 기반 신약 개발의 대표 기업으로, 2021년에는 AI가 설계한 섬유화 치료제를 단 18개월 만에 전임상에서 임상 1상으로 진입시켰습니다.
기존에 4~5년 걸리던 과정을 1년 반으로 단축시킨 셈입니다.
또한, 이 기업은 AI가 처음부터 끝까지 참여한 신약 후보를 자체 임상에 진입시킨 세계 최초의 사례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2. 영국 — 엑사이언티아(Exscientia)

글로벌 제약사들과 협업 중인 AI 제약 스타트업으로, 2022년에는 AI가 디자인한 항암제 후보가 임상시험에 진입했습니다.
특히 이 회사는 임상 설계 자체도 AI가 돕는 방식으로 효율성을 극대화하고 있습니다.

3. 한국 — 스탠다임, 신테카바이오, 뷰노 등

한국에서도 AI 신약 개발 기업들이 활발히 등장하고 있습니다.

  • 스탠다임은 자체 AI 플랫폼을 이용해 약물 재창출(drug repositioning)에 주력하고 있으며, 다수의 제약사와 공동 연구를 진행 중입니다.
  • 신테카바이오는 AI 기반 유전체 분석으로 표적 치료제 개발을 추진 중이며, 신약 후보 물질을 도출하고 이를 제약사에 기술이전하는 모델을 구축하고 있습니다.
  • 뷰노는 의료영상 AI를 넘어 전자의무기록 기반 약물 반응 예측 모델로 확장 중입니다.

 

AI가 만든 신약, 정말 믿을 수 있을까?

AI 기술이 신약 후보물질을 발굴하고 임상시험을 설계할 수 있을 정도로 발전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AI가 만든 약, 정말 복용해도 괜찮은 걸까?”라는 근본적인 의문을 갖게 됩니다. 기존에는 수많은 과학자와 연구원이 오랜 시간에 걸쳐 검증한 결과물을 복용했지만, 이제는 기계가 설계한 약물이 인간의 건강에 투여된다는 사실 자체가 다소 낯설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AI가 만든 신약이라고 해서 안전성과 효과가 떨어지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누가 만들었느냐’가 아니라 ‘어떤 과정을 거쳐 검증되었느냐’입니다. 신약이 시장에 출시되기까지는 무조건 같은 규제와 동일한 검증 절차를 거쳐야 하며, 이 기준은 AI 개발 약물이라고 해서 절대 예외가 아닙니다.

엄격한 임상시험과 허가 절차는 그대로

현재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신약이 허가되기 위해 반드시 전임상시험(동물시험), 임상 1상~3상(사람 대상), 시판 후 모니터링을 거쳐야 합니다. 이 과정은 수년이 걸리고, 실패 확률도 매우 높지만, 그만큼 약의 안전성과 유효성을 객관적으로 증명하는 절차이기도 합니다.

AI가 만든 신약도 이 과정을 예외 없이 통과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인실리코 메디슨이나 엑사이언티아가 AI로 설계한 약물도 전통적인 임상시험 과정을 그대로 거치며, FDA(미국 식품의약국) 또는 EMA(유럽의약품청) 등의 심사를 받습니다. 실제로 AI가 처음 설계한 신약이 임상 1상에 진입한 사례가 있지만, 이것이 상용화되려면 최소 수년간의 임상과 사후 검증을 모두 통과해야만 합니다.

즉, AI가 만든 약이라도 ‘사람이 만든 약’과 동일한 수준의 규제와 과학적 기준을 충족해야 하기 때문에, 약물의 신뢰도 자체는 떨어지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왜 우려가 생길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소비자와 환자들은 AI 신약에 대해 심리적 거리감이나 우려를 가질 수 있습니다. 이는 주로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 비롯됩니다:

  1. 기계가 설계한 약이라는 낯선 개념
    과거에는 인간 전문가의 손을 거친 결과물이라는 ‘정서적 신뢰’가 있었지만, AI는 기계적 판단을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설계 과정이 불투명하거나 이해하기 어렵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2. 데이터 편향 문제
    AI는 학습된 데이터에 따라 결론을 도출하기 때문에, 학습 데이터가 특정 인종, 연령, 성별에 치우쳐 있을 경우, 일부 환자 집단에서는 예기치 않은 반응이나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는 우려가 존재합니다.
  3. 설명 가능한 인공지능(XAI)의 부족
    AI가 왜 특정 약물 구조를 선택했는지, 왜 그 후보를 제안했는지를 명확히 설명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는 ‘검증은 통과했지만, 설계 원리를 이해하기 어렵다’는 불안감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제약업계와 인공지능 개발자들은 AI의 판단 과정을 보다 투명하게 만들고, 다양한 인구 집단을 포함한 데이터로 알고리즘을 학습시키며, 설명 가능한 인공지능(XAI) 기술을 도입하고 있습니다. 신뢰할 수 있는 AI를 만들기 위한 노력은 신약 개발만큼이나 활발하게 진행 중입니다.

 

기술보다 중요한 것은 신뢰

결국 AI가 만든 신약의 안전성과 효과는 기술력 그 자체보다는, 그 기술이 어떤 과정을 거쳐 검증되었는가, 그리고 그 검증이 충분히 공개되고 투명하게 이뤄졌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환자와 의료진이 신약을 선택할 때 신뢰할 수 있는 기준은 여전히 **‘과학적 근거와 임상 데이터’**입니다.

앞으로 AI 기반 신약이 점점 늘어날 것이고, 우리 일상에서 ‘AI가 설계한 약’을 처방받는 날도 머지않았습니다. 따라서 단순히 기술에 대한 막연한 거부감보다는, 어떤 데이터로 만들어졌는지, 어떤 검증을 거쳤는지, 투명성이 확보됐는지 등을 중심으로 판단하는 사고방식이 필요합니다.

 

AI와 인간, 제약의 미래를 함께 설계하다

AI가 신약 개발 전반에 걸쳐 점점 많은 역할을 수행하게 되면서, 많은 사람들은 ‘AI가 제약 전문가를 대체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집니다. 그러나 실제 현장의 분위기나 전문가들의 의견은 다릅니다. AI는 인간을 대체하는 존재가 아니라, 함께 미래를 만들어가는 협업 파트너라는 것이 점점 더 명확해지고 있습니다.

AI가 특히 강점을 보이는 영역은 계산, 패턴 인식, 대규모 데이터 분석, 그리고 예측 모델링입니다. 예를 들어 특정 질병의 단백질 구조를 분석하고, 이 구조에 맞는 화합물을 수백만 개 중에서 빠르게 탐색하는 데 AI는 인간보다 훨씬 빠르고 정확합니다. 또한, 기존에 실패한 임상 데이터를 분석해 어떤 특성에서 실패 가능성이 높았는지를 파악하고, 이를 기반으로 새로운 임상 설계를 제안하는 일도 AI가 탁월하게 수행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의 해석, 통합적 판단, 그리고 윤리적 고려는 여전히 인간 전문가의 몫입니다. 실제 환자와 마주하며, 병의 진행 양상과 예외적 상황을 이해하는 것은 단순히 데이터만으로 판단할 수 없는 영역입니다. 특히 고령 환자나 복합질환을 가진 환자의 경우, 약물 반응은 매우 다양하게 나타날 수 있으며, 이러한 변수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의사결정을 내리는 능력은 현재로선 인간의 직관과 임상경험이 훨씬 앞서 있습니다.

또한 신약 개발은 단순한 화학적·생물학적 작용만으로 이뤄지는 것이 아닙니다. 환자 중심의 치료 전략, 사회적 수용성, 약물 접근성, 약가 정책 등 복합적인 요소들이 얽혀 있는 산업입니다. 이처럼 의료와 사회가 맞물린 영역에서는 여전히 ‘사람의 결정’이 가장 중요한 가치 기준이 됩니다.

그래서 최근 제약업계에서는 ‘AI First’가 아니라 ‘AI + Human’ 전략을 지향하는 움직임이 뚜렷합니다. AI는 신약 개발의 복잡한 퍼즐 중 가장 어려운 계산 문제를 먼저 풀어주는 조력자이고, 인간은 그 조각들을 조율하고 완성하는 설계자 역할을 수행합니다. 어떤 후보물질이 시장성과 치료 가능성을 갖는지, 또 이를 어떤 방식으로 임상 단계에 올릴 것인지에 대한 전략 수립에는 인간의 관점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이러한 협업 구조는 단순히 효율성만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더 많은 환자에게, 더 빠르게, 더 안전한 약을 제공하기 위한 궁극적인 목표를 공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AI는 인간 전문가가 더 높은 차원의 전략적 사고와 창의적인 판단에 집중할 수 있도록 반복적인 업무를 줄여주고, 인간은 AI가 제공하는 정보에 의학적, 윤리적, 사회적 가치 판단을 덧붙여 의사결정을 내립니다.

결국 신약 개발의 미래는, AI와 인간이 서로의 한계를 보완하며 함께 설계해 나가는 ‘공진화(co-evolution)’의 형태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것은 단순한 자동화가 아니라, 전문성과 기술이 만나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시작이라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