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 인공지능(AI)은 영상진단, 병리분석, 신약개발 등에서 빠른 속도로 발전해왔다. 특히 대형병원과 종합의료기관을 중심으로 도입 사례가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우리 의료체계에서 가장 많은 환자가 처음으로 접하게 되는 공간, 바로 1차 진료기관에서는 의료 AI의 활용이 아직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다. 그렇다면 의료 인공지능은 과연 1차 진료 영역에서 얼마나 실효성 있게 활용될 수 있을까?
1차 진료는 환자가 처음 방문하는 진료 단계로, 감기·복통·피부질환·고혈압 등 경증 또는 만성질환의 진단과 상담, 예방적 처치를 담당한다. 대개는 가정의학과, 내과, 이비인후과, 피부과, 정신건강의학과 등이 이에 해당하며, 의사는 매우 짧은 진료 시간 안에 다양한 증상에 대한 초기 판단을 내려야 한다. 이러한 1차 진료의 특성은 의료 인공지능과 매우 밀접한 관계를 가진다. 빠른 판단과 반복적인 의사결정이 요구되는 환경에서 AI는 진단을 보조하고, 의료진의 부담을 줄이는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1차 진료기관에서 가장 많이 시도되고 있는 AI 활용 사례는 흉부 엑스레이 판독이다. 국내 기업 루닛, 뷰노 등이 개발한 영상판독 AI 솔루션은 엑스레이 촬영 후 수초 내로 폐렴, 결핵, 폐결절 여부를 시각화된 결과로 보여준다. 이는 영상의학과 전문의가 상주하지 않는 의원에서 유용하게 활용되며, 실제로 의료진의 진단 민감도를 10~15% 향상시키는 데 기여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모든 판단은 의료진의 최종 책임 하에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AI는 보조적 역할로 제한된다.
피부질환 AI 역시 점차 주목받고 있다. 단순 염증, 습진, 건선, 곰팡이성 질환 등 외형이 비교적 명확한 질환에서는 AI가 유사도를 비교해 초기 진단 후보군을 제시할 수 있다. 특히 휴대폰 사진 한 장으로 자가진단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접근성과 활용성 모두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러나 흑색종처럼 양성·악성 감별이 중요한 질환에서는 여전히 AI의 판단력이 의사의 숙련도에 비해 부족하다는 한계도 명확하다.
AI 기반 문진 시스템도 1차 진료에서 주목받고 있다. 진료 전 환자가 키오스크나 스마트폰을 통해 증상을 입력하면, AI가 그 내용을 분석해 진료과를 추천하거나, 증상 요약을 진료실에 전달해주는 방식이다. 이는 진료 시간을 단축시키고 반복적인 문답을 줄여 의료진의 피로도를 낮추는 데 효과적이다. 또한 환자의 진료 목적을 사전에 파악함으로써 병원 내 대기시간을 줄이는 부수 효과도 기대된다.
그러나 의료 인공지능이 1차 진료 현장에서 실질적으로 활용되기 위해서는 여전히 넘어야 할 몇 가지 중요한 장벽이 존재한다. 그중 가장 대표적인 문제는 법적 책임의 불명확성이다. 현재 의료 AI는 '진단 보조 도구'로 분류되어 있으며, 최종 진단과 처방에 대한 책임은 전적으로 의료진에게 귀속된다. 만약 AI가 잘못된 분석 결과를 제공했더라도, 해당 판단을 참조하여 내린 진단 결과에 대해 법적 책임은 의료인이 지게 된다. 이러한 구조는 의료진에게 심리적 부담과 법적 리스크를 동시에 부여하며, AI 기술을 도입하고 활용하는 데 있어 소극적인 태도를 유발한다. 특히 중소 의료기관에서는 이 같은 책임 구조에 대한 불안감이 더욱 크게 작용하며, 기술 도입의 실질적인 장벽으로 작용하고 있다.
두 번째는 비용 문제이다. 대형 병원에 비해 상대적으로 운영 여력이 부족한 1차 진료기관 입장에서는, 의료 AI 솔루션 도입에 따른 초기 설치비용, 유지보수비용, 혹은 클라우드 기반의 구독료조차도 상당한 부담이 될 수 있다. 더욱이 현재 의료 수가 체계는 AI 도입에 따른 추가 진료 수익이나 효율 향상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으며, 이로 인해 ROI(투자 대비 수익률)를 확보하기 어려운 현실이 지속되고 있다. 일부 기업들이 클라우드 기반의 SaaS(서비스형 소프트웨어) 모델로 진입 장벽을 낮추고는 있으나, 여전히 기술 보급의 속도는 더딘 편이며, 전국적인 확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
세 번째 장벽은 환자의 수용성이다. 의료 AI는 의료인과 환자 사이의 진료 방식에 변화를 유도하기 때문에, 특히 고령층 환자나 디지털 격차가 존재하는 지역에서는 '기계가 진료를 대신한다'는 인식에 대한 거부감이 강하게 나타날 수 있다. 실제로 일부 환자들은 AI가 개입한 진료 결과에 대해 불신을 표하거나, 비인간적 진료라고 느끼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상황은 의료진에게도 AI 활용을 자제하게 만들 수 있으며, AI 진료 시스템의 효율성을 약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따라서 의료 인공지능은 어디까지나 사람 중심 진료를 보완하는 도구이며, 의료인의 전문성을 대신하는 것이 아니라 지원하는 기술이라는 점을 환자에게 명확하게 전달할 필요가 있다.
결국 의료 인공지능이 1차 진료에 성공적으로 정착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법적·경제적·사회적 장벽을 하나하나 극복해 나가야 하며, 기술적 발전과 함께 사회적 수용성을 높이기 위한 제도적 정비와 인식 전환이 병행되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앞으로 1차 진료에 의료 인공지능을 효과적으로 도입하기 위해서는 어떤 준비가 필요할까? 첫째, 정부 차원의 명확한 정책 가이드라인 마련이 시급하다. 현재 의료 AI는 기술의 고도화에도 불구하고, 법적 책임 구조나 활용 기준이 불분명해 의료 현장에 도입되기 어려운 실정이다. 따라서 의료 AI의 진단 보조 범위, 데이터 수집 및 활용 기준, 법적 책임 주체의 명확화 등 핵심 쟁점에 대한 법적·제도적 기준을 정립해야 한다. 이와 같은 기준이 마련되어야만 의료기관과 기업이 예측 가능한 환경 속에서 AI 기술을 안심하고 도입하고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둘째, 의료인에 대한 AI 교육 강화가 필수적이다. 아무리 뛰어난 알고리즘이 개발되더라도, 그 판단을 어떻게 해석하고 의료적 결정을 내리는지는 결국 의료인의 몫이다. 따라서 의료 인공지능의 원리, 적용 범위, 신뢰도 해석, 편향 가능성 등을 이해할 수 있는 전문 교육 과정과 지속적인 리터러시 강화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이는 단지 기술 사용법을 익히는 차원을 넘어, AI와 협업하는 의료인의 역량을 높이는 중요한 기반이 될 수 있다.
셋째, 1차 진료기관에 대한 재정적·기술적 지원 정책이 병행되어야 한다. 현재 중소 의원은 AI 솔루션의 초기 비용이나 유지비용에 부담을 느끼며 도입을 꺼리는 경향이 있다. 이에 따라 정부는 공공의료 기관부터 의료 AI를 시범적으로 도입하고, 일정 기준을 충족하는 중소 의원에 대해 AI 구독형 모델에 대한 보조금 지원 또는 세제 혜택을 제공하는 방안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아울러 공공 클라우드 기반의 의료 데이터 연계 시스템 구축, 공인된 AI 솔루션 목록 제공 등 기술 선택과 데이터 연동의 복잡성을 줄이는 정책적 접근도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이처럼 기술적 완성도와 의료 현장의 필요성, 그리고 정책적 기반이 유기적으로 연결될 때 비로소 의료 AI는 1차 진료의 현실에 효과적으로 뿌리내릴 수 있을 것이다. 단순한 진료 자동화가 아닌, 의료진의 의사결정을 보완하고 진료의 질을 향상시키는 조력자로서의 의료 인공지능은 1차 진료의 구조 자체를 보다 효율적이고 안전한 방향으로 재편할 가능성을 지닌다. 앞으로의 의료 환경은 기술 중심이 아닌 사람 중심으로, 그러나 기술의 도움을 충분히 활용하는 형태로 진화해갈 것이다. 이제는 1차 진료 현장에서도 의료 인공지능을 낯선 존재가 아닌 의료 현장의 새로운 동료로 받아들일 준비가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