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 인공지능(AI)의 도입이 빠르게 확산되면서 의료계 내부에서는 기대와 불안이 동시에 커지고 있다. 특히 AI가 의료진의 진단, 처방, 수술 계획까지 보조하거나 직접 수행하는 수준까지 발전하면서 “AI가 의료진의 일자리를 빼앗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된다. 실제로 일부 영상의학 분야에서는 AI 판독 시스템이 전문의보다 빠르고 정확하게 질병을 판별해내는 사례가 알려지며, 직업 안정성에 대한 불안감이 커진 것도 사실이다.
AI는 방대한 의료 데이터를 학습하고 이를 기반으로 패턴을 식별하거나 질병을 예측할 수 있는 강점을 지닌다. 특히 딥러닝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영상 데이터 분석, 병리 슬라이드 해석, 유전체 기반 질병 위험도 예측 등 다양한 영역에서 사람보다 빠르고 정확한 판단을 내릴 수 있다는 점에서 의료진의 기존 역할과 일부 겹치는 부분이 나타난다. 이로 인해 일부 직군에서는 “AI로 인해 일자리가 축소되거나, 병원 내에서의 역할이 감소할 것”이라는 현실적인 걱정이 나온다.
그러나 AI가 의료인의 ‘대체자’가 될 것인가, 아니면 ‘보조자’가 될 것인가에 대한 논의는 단순하지 않다. 의료 행위는 단순한 지식 전달이나 계산이 아니라, 환자의 감정과 맥락을 이해하고 공감하며 의사결정을 내리는 복합적인 행위이기 때문이다. AI는 방대한 데이터를 빠르게 분석하는 데 탁월하지만, 환자의 삶의 질, 치료 선택에 대한 윤리적 판단, 의료진과 환자 사이의 신뢰 관계 형성에는 한계가 있다.
특히 외과, 내과, 정신과 등 사람과의 직접적인 소통이 중요한 분야에서는 AI가 중심 역할을 하기는 어렵다. 예를 들어, 정신과 진료에서 환자의 미묘한 표정 변화, 어조, 말의 흐름 등을 종합해 진단하는 과정은 아직까지 AI가 완전히 대체할 수 없는 부분이다. 외과 영역에서도 AI는 수술 경로를 제안하거나 로봇 수술을 보조할 수는 있지만, 수술 중 예상치 못한 상황에 대한 판단, 윤리적 고려, 환자와의 관계 형성 등은 여전히 인간 의료진의 몫이다.
반면 영상의학과나 병리과처럼 데이터 기반 판단이 주가 되는 분야는 AI의 영향력이 더 클 수밖에 없다. 영상 판독이나 병리 슬라이드 분석의 경우, 수천 건의 유사 데이터를 기반으로 AI가 정밀하게 학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일부 국가는 의료 시스템 내에서 영상의학 판독 업무의 일정 부분을 AI로 대체하고, 의료진은 복잡 사례나 의사소통이 필요한 케이스에 집중하는 방식으로 업무 구조가 변화하고 있다.
또한 의료기관의 입장에서는 AI 도입이 의료 인력 축소를 위한 수단이라기보다는 ‘의료 질 향상’과 ‘업무 효율화’ 목적이 더 크다. AI가 반복적이고 시간이 많이 드는 업무를 맡고, 의료진은 보다 복잡한 판단과 환자 중심의 돌봄에 집중하는 구조가 이상적이다. 이미 국내 일부 병원에서는 AI가 MRI, CT를 사전 분석하고 의사는 최종 판단만 내리는 협업 구조가 정착되고 있다. 이는 판독 속도를 높이고 오류를 줄이는 동시에, 진료의 질을 높이는 데 기여하고 있다.
AI는 응급실에서도 활용되고 있다. 환자의 바이탈 데이터를 실시간 분석해 중증도를 예측하고, AI가 triage(환자 중증도 분류)를 도와 응급 상황을 분산 처리할 수 있도록 돕는다. 간호 업무 중에서도 투약 시점 알림, 환자 모니터링, 간단한 상담 자동화 등 다양한 영역에서 AI가 도입되고 있으며, 이는 의료 인력 부족 문제를 일정 부분 해결하는 데 기여한다.
의료진 일자리 변화의 핵심은 ‘사라지는 일자리’보다 ‘바뀌는 일자리’에 있다. 단순 판독이나 수작업 중심의 업무는 AI에 의해 대체될 수 있지만, AI를 이해하고 결과를 해석하며 환자에게 설명하는 ‘AI 연계형 역량’을 갖춘 의료진의 수요는 오히려 증가할 수 있다. 의료진의 역할이 ‘AI 사용자’로서 진화하면서, 의학 교육에서도 데이터 해석 능력, 디지털 헬스 이해, 윤리적 소양 등이 강조되고 있다.
앞으로는 단순한 진단 능력뿐 아니라, 복잡한 상황에서 AI의 판단을 해석하고, 환자의 가치관과 건강 목표에 맞게 치료 방향을 조율할 수 있는 통합적 사고력이 더욱 중요해질 것이다. 특히 환자와의 소통, 의료 윤리 판단, 새로운 기술에 대한 비판적 수용 능력 등은 AI가 쉽게 대체할 수 없는 역량이다. 이러한 점에서 향후 의료인은 ‘기술 + 인간 중심의 하이브리드 전문가’로 진화하게 될 것이다.
해외에서는 이미 'AI와 협업할 수 있는 의료인 양성'을 목표로 커리큘럼을 개편한 의대들도 늘고 있다. 예를 들어, 캐나다 토론토대와 미국 스탠퍼드대는 의료 AI 이해도를 필수 교육에 포함시키고, 실제 의료기기와의 인터페이스 훈련을 강화하고 있다. 또한 일본의 몇몇 대학은 AI 모델 개발에 의료진이 직접 참여하도록 장려하며, 의료-기술 융합형 인재 양성을 적극 추진 중이다. 이는 AI를 단순한 위협이 아닌 ‘동료 도구’로 인식하는 인재를 양성하기 위한 전략이다.
국내에서도 의료계는 점차 AI에 대한 수용도를 높이고 있다. 최근 대한의학회, 병원협회 등은 AI 도입 가이드라인을 공동으로 제정하고 있으며, 각 병원에서도 의료진을 대상으로 AI 교육 세션을 개설하는 추세다. 향후 국가 차원에서도 의대 정원 확대 논의와 함께, AI 대응 역량을 갖춘 의료 인재 양성 체계를 수립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결국 의료 인공지능의 도입은 의료진의 일자리를 일방적으로 줄이는 것이 아니라, 의료인의 역할을 재정의하고 확장시키는 계기가 될 가능성이 크다. 중요한 것은 AI가 할 수 없는 인간만의 영역, 즉 공감, 윤리, 통합적 판단 능력을 키우고, 동시에 디지털 기술에 대한 이해를 갖춘 ‘하이브리드형 전문가’로 거듭나는 것이다.
앞으로의 의료는 사람과 AI가 협력하는 구조로 나아갈 것이다. 누가 AI에 밀리느냐가 아니라, 누가 AI와 잘 협업하느냐가 의료인의 경쟁력을 좌우하게 될 시대가 이미 도래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에 유연하게 적응하고 선도적으로 대응하는 의료진과 기관이, 미래의 의료 생태계에서 중심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