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기술이 의료 현장에 본격적으로 도입되면서, 이제는 단순한 진단 보조를 넘어 AI 자체가 ‘의료기기’로 인정받는 시대가 되었다. 질병 진단, 병리 이미지 분석, 약물 반응 예측 등 다양한 기능을 수행하는 인공지능 기반 소프트웨어(SaMD: Software as a Medical Device)는 식약처의 허가를 받아야만 의료 현장에서 정식으로 사용될 수 있다. 그렇다면 식약처는 이런 AI 의료기기를 어떤 기준으로 심사하고 있을까?
우선 기본적으로 AI 의료기기라고 해서 일반 의료기기와 전혀 다른 심사 절차를 따르는 것은 아니다. 식약처는 ‘의료기기법’에 따라 기기의 위험도에 따라 1~4등급으로 분류하고 있으며, AI 의료기기 역시 이 기준에 따라 등급이 정해진다. 예를 들어, 단순 건강관리 보조 AI는 1등급으로 분류될 수 있지만, 뇌출혈을 자동으로 탐지하고 진단에 활용되는 AI는 3등급 이상의 고위험군으로 분류된다.
그렇지만 AI 특유의 특성—예를 들어, 기계학습 모델이 스스로 업데이트되거나, 데이터에 따라 판단이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은 기존 의료기기 심사와는 다른 기준을 필요로 한다. 이에 식약처는 ‘인공지능 의료기기 허가・심사 가이드라인’을 별도로 운영하고 있으며, 모델의 학습 방법, 성능 검증 방식, 외부 데이터 일반화 가능성, 설명 가능성 등 다양한 요소를 평가하고 있다.
특히 AI의 경우 “설명 가능성(Explainability)”이 중요한 평가 기준이 된다. 왜냐하면 AI가 내린 판단이 의료진이나 환자에게 설명되지 않는다면, 그 결과에 대한 신뢰가 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최근에는 '설명 가능한 AI' 모델을 우선적으로 고려하고 있으며, 임상 현장에서 의료진이 AI의 판단 근거를 이해하고 검토할 수 있도록 하는 기능도 중요하게 본다. 이는 단순히 사용자 친화성을 높이기 위한 기능이 아니라, 의료법적 책임 소재를 명확히 하기 위한 장치이기도 하다.
또한 성능 검증 측면에서도, 단순히 높은 정확도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학습 데이터가 편향되어 있을 경우 실제 임상에서는 오작동할 수 있으므로, 식약처는 다양한 인종, 성별, 나이, 질환 단계 등을 고려한 ‘외부 검증 데이터셋’ 활용을 강조하고 있다. AI가 의료기기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이질적인 환경에서도 안정적인 성능을 보여줘야 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임상시험 수준의 평가 과정을 요구하는 경우도 있으며, 실제 의료기관에서 테스트한 결과를 반드시 제출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업데이트 방식도 주요 심사 요소 중 하나다. 기존 의료기기는 한 번 허가가 나면 고정된 형태로 사용되지만, AI 의료기기는 알고리즘이 지속적으로 학습하거나 버전이 바뀔 수 있다. 식약처는 이러한 변경이 환자 안전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보고, 알고리즘 업데이트 시 ‘사전 승인’ 또는 ‘사후 보고’를 요구하는 절차를 마련하고 있다. 특히, 성능에 영향을 주는 핵심 알고리즘의 변경일 경우, 초기 허가를 다시 받아야 할 수도 있다. 이는 AI의 유연성과 자율성을 제약하는 요소일 수 있지만, 의료의 특성상 안전성이 최우선이라는 점을 반영한 조치이다.
또한 국내와 달리 미국 FDA나 유럽 EMA에서는 AI 의료기기에 대한 별도 트랙을 두고 더 빠른 인허가 절차나 ‘조건부 승인’ 제도를 시행하고 있어, 국내 제도와 비교해보는 것도 의미가 있다. 예를 들어, FDA는 ‘사전 인증 모델(pre-certification)’을 도입하여 반복적인 승인 절차 없이 AI가 지속적으로 업데이트될 수 있는 체계를 일부 허용하고 있다. 이는 AI 기술의 속도에 제도가 유연하게 대응하기 위한 시도이며, 향후 국내 규제에도 영향을 줄 수 있는 중요한 흐름이다.
실제로 국내 의료 스타트업들도 글로벌 시장 진출을 위해 미국이나 유럽의 인허가 절차를 병행하고 있으며, 각국의 기준 차이로 인해 추가적인 비용과 시간이 소요되기도 한다. 따라서 식약처 역시 국제 기준에 발맞춰 규제 체계를 정비하고 있으며, AI 의료기기 심사 인력 전문화, 심사 기간 단축, 전자 심사시스템 고도화 등의 노력을 병행하고 있다.
결국 AI 의료기기는 기술력 못지않게 '신뢰와 검증'이 핵심이다. 아무리 정밀한 알고리즘이라도 설명이 어렵고, 오작동 가능성이 있으며, 의료진이 판단의 근거를 알 수 없다면 현장에서 활용되기 어렵다. 따라서 식약처의 심사는 단순히 기술의 우수성을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환자의 안전성과 의료현장의 신뢰도까지 포함한 종합적 접근이라고 볼 수 있다. 더불어 AI 개발자 역시 심사기관과의 협업을 통해 초기부터 규제 대응 전략을 함께 수립하는 것이 성공적인 인허가를 위한 핵심 전략이 될 수 있다.
앞으로 AI 기술이 더욱 정교해지고, 의료 데이터가 풍부해질수록 AI 의료기기의 수는 계속 증가할 것이다. 이 과정에서 식약처의 심사 체계도 계속해서 고도화될 필요가 있으며, 의료 현장과 개발자, 규제기관이 긴밀히 협력하는 것이 더욱 중요해질 것이다. 궁극적으로는 ‘안전하면서도 혁신적인 기술’이라는 두 가지 목표를 동시에 만족시키는 의료 AI 생태계를 만들기 위한 균형 잡힌 규제가 필요하다.